“오늘도 건물 옥상에서 자야 해요.”
지난 3일 오후 8시쯤 경기 안양시 안양역에서 만난 수지양(가명·17)은 오늘 밤을 어디서 보낼 거냐는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수지양의 손에 이끌려 찾은 상가건물 옥상 여기저기에는 죽은 벌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지난 5일간 여기서 잠을 잤다는 수지양은 “누가 왔다 갔다는 티를 내면 경비원이 문을 걸어 잠글까봐 벌레들을 안 치운다. 학원 전단지를 깔고 앉으면 괜찮다”고 했다. 수지양은 손바닥만 한 전단지를 두 장 깔고 앉아 벽에 기대 잠을 청했다. 수지양은 “누구와 밤에 함께 있는 게 처음”이라며 훌쩍였다.
●
일자리도, 숙식 해결할 곳도 줄어
●
고등학교 1학년인 수지양은 가정 밖 청소년이다. 아버지와 오빠의 폭력, 어머니의 방관에 시달리다 석 달 전 가출했다. “오빠가 대학을 가면 독립하겠거니 하고 버텼는데 오빠가 재수, 삼수를 거듭하면서 희망이 없어졌어요.” 그렇게 집을 나선 수지양은 주로 건물 옥상 계단에서 밤을 지샌다. 친구네 집은 부모님이 없을 때야 다녀올 수 있다. 씻는 건 그때뿐이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 비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번다.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나오는 고등학생 아르바이트는 다 지원해봤어요. 전단지 돌리는 걸 했는데 하루에 2~3시간만 일할 수 있고 2만원 주더라고요. 그거 말고는 편의점, 식당 아르바이트는 다 ‘고등학생 사절’이라고 해서 정기적인 알바는 못해요.”
코로나19는 가정 밖 청소년들을 더욱 취약한 상황에 내몰고 있다. 당장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가 줄었다. 기자가 지난달 31일과 이달 3일 만난 가정 밖 청소년들은 모두 노숙 중이거나 노숙을 한 경험이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신림역에서 만난 고등학교 2학년 현경양(가명·18)도 “상가 건물 옥상이나 버스터미널 휴게실에서 몰래 눈을 붙여야 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현경양은 공장이나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는 “미성년자라 부모 동의 없이는 일을 안 시켜줘서 아는 언니 이름을 빌려 일하고 있다”며 “지난주에 일한 돈을 언니가 현금을 뽑아서 줬다. 며칠은 밥 먹을 걱정은 안 돼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생활비 마련이 어려워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구로역에서 만난 고등학교 3학년 은주양(가명·19)은 한 살 많은 남성과 ‘가출팸’을 꾸려 모텔에서 장기 투숙 중이다. 일행을 구한다는 연락에 응답한 기자에게 은주양은 “‘조건사기’를 하면 한 번에 5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했다. ‘조건 사기’란 이른바 ‘조건 만남(미성년자 성매매)’을 하려는 성인의 만남에 응했다가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협박해 돈을 편취하는 수법이다. 은주양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 ‘조건 사기’가 벌이가 제일 쉬운 것 같다”고 했다.
●
가정 밖 청소년은 주거지원 사각지대
●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6월3일 ‘홈리스 청소년 지원 입법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총 11만5741명이다. 가정 밖 청소년 4명 중 1명(23%)은 노숙 경험이 있다. 가정 밖 청소년들은 친구 집(72.5%), 모텔이나 고시원(41.2%) 등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가정 밖 청소년들을 위해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에 머문다는 답변은 37.7%에 그쳤다. 여가부는 전국에 총 133개소의 청소년 쉼터를 기간에 따라 일시 쉼터(24시간~일주일 내), 단기 쉼터(3개월 이내), 중장기 쉼터(3년 이내)로 구분해 운영 중이다.
모텔에 들어갈 돈이 없고 친구 집에서 머물 수도 없는 가정 밖 청소년에게 청소년 쉼터는 최후의 보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청소년 쉼터 운영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가정 밖 청소년들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 상담하는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의 이윤경 활동가는 8일 “여성가족부는 쉼터 입소를 유지하라고만 하고 방역 수칙을 지킬 수 있는 지원책은 전혀 안 내놓는다”며 “한 방에 두세 명씩 살면서 공간을 빽빽하게 쓰고 있는 쉼터의 여건상 방역 수칙을 지키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가정 밖 청소년은 법률상 주거약자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2조는 만 18세 이상만 지원 대상으로 규정한다. ‘노숙하는 청소년’이라는 법률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은 ‘가출 및 홈리스 청소년법’ 등 법률을 근거로 고정된 주거 공간이 없는 청소년을 지원한다.
현행 아동복지법도 아동보호시설에 입소한 청소년을 주된 지원 대상으로 규정한다. 아동보호시설은 보호자와 상담해 사실 확인을 거친 청소년만 들어갈 수 있다. 청소년 쉼터는 이런 절차 없이 가정 밖 청소년이 직접 신청해 들어간다. 아동보호시설에서 퇴소하면 임대주택을 지원받을 수 있다. 반면 청소년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의 경우 2년 이상 지내고 만 18세 이상이어야 매입임대주택 또는 청년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청소년 쉼터에서 2년 이상 연속으로 지내는 청소년이 드물다는 점이다.
이윤경 활동가는 “만난 청소년들 중에 쉼터를 기피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그는 “쉼터별로 세세한 규칙들을 만들어서 운영하면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퇴소시킨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은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마음과, 그렇게 나를 대해도 되는 사람과 생활해야 한다는 게 너무 모욕적이고 힘든 경험이라고들 이야기한다”고 했다. 게다가 가정 밖 청소년은 대부분 18세 이하이다.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실질적 주거지원책은 없는 셈이다.
●
코로나19로 대면상담도 축소
●
가정 밖 청소년이 상담 지원을 받을 통로도 좁아졌다. 엑시트는 2011년부터 서울 관악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매주 상담·의료지원 등 ‘아웃리치’ 활동을 해왔는데, 지난 해 8월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한 달 간 대면 상담이 차단됐다. 이후 대면 상담을 재개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이는 엑시트가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비정부기구(NGO)라서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는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시간당 상담 인원을 제한한다. 평소 시간당 상담 인원이 10명이라면 거리 두기 2단계에선 50%, 3단계에선 30%만 상담받을 수 있다. 거리 두기 4단계인 현재는 쉼터 연계·귀가지원·긴급구조지원 등만 가능하다. 일반적인 상담을 위한 쉼터 이용은 불가능하다.
엑시트에서 활동하는 마한얼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청소년들을 주기적으로 만나서 여러 가지 모습을 직접 보고 들으며 상황을 체크해야 한다”며 “(대면 상담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방역 수칙을 지키는 선에서) 직접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가게끔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김혜리 기자 harry@khan.kr